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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家, 우리는 돌아갈 집이 있는가? 귀가歸家,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여기서 ‘집’과 ‘돌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스레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닌 예전, 아침에 집을 나서서 낮에 일을 보고 나면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건 누구에게나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때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의 마을 어디의 풍경이 다 그랬었다. 저녁이 되어도 사람이 들지 않으니 지금은 집다운 집이 없는 홈리스의 시대라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이제는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겠지만 사위가 어둑어둑해지면 집집마다 창에는 불이 들어온다. 아궁이에 불이 지펴져서 집집마다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면 밥 짓는 냄새가 온 동네에 퍼져나가다. 밥에 뜸을 들일 즈음일까 엄마가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로 골목이 메아리쳤다. .. 더보기
손님이 며칠이라도 머물고 싶은 단독주택-가랑비와 이슬비 손님이 며칠이라도 머물고 싶은 단독주택 -문으로 열려 내외부가 하나 된 ‘우리집’ 주인의 입장에서는 마뜩잖은 손님이 영 돌아갈 기색을 보이지 않는데 때마침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주인은 어서 가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실어 ‘가랑비’가 내린다고 했더니, 손님은 그 뜻을 알아차렸는지 ‘이슬비’가 내린다고 응수하면서 더 있고 싶다는 의중을 전했다고 한다. 손님의 왕래가 잦았던 시절의 우스개 얘기라서 요즘 같은 아파트 살이에서는 실감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예로부터 집에 손님이 자주 들어야 흥하는 기운이 돌고, 객의 발걸음이 끊어지면 기운이 쇠한고 여겼다. 한옥 대문을 보면 안으로 향해 여닫게 되어 있다. 이것은 들이기는 하되 내보내지 않겠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열고 닫히는 방향이 집 안으로 향하는.. 더보기
자연과 어우러지도록 짓는 집 옛 선비들은 작은 집에 청빈하게 사는 것을 덕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를 일컬어 근근이 비를 가린다는 뜻의 비우(庇雨) 사상이라 하는데, 일례로 '지봉유설' 등 명저를 남긴 석학 이수광이 그 사상과 유적을 남기기 위해 주춧돌 위에 조촐하게 초우를 복고하여 그 당호를 비우당(庇雨堂)이라 불렀다는 일화가 있다. 그와 같은 사상은 '십 년을 경영하야 초려삼간 지었나니/ 반 칸은 청풍이요 반 칸은 명월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라고 노래한 사계 김장생의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집은 비워져 있고 오히려 집 주변의 청풍명월이 집을 채운다. 거기서 집은 한 그루 나무처럼 자연의 일부로 존재한다. 소월은 또 이렇게 노래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더보기
집에 집이 없어야 하는 이유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14 집에 집이 없어야 하는 이유 자연은 견성정(見性情)의 대상이다. 그 대상 앞에서 집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할까? 많은 시들은 집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의 감각적인 대상들을 즐겨 노래한다. “빈창에 눈보라 치고 촛불 그물거리는 밤 달빛에 걸러진 솔 그림자 지붕 머리에 어른댄다 밤 깊어 알괘라! 산바람 지나가는 줄 담 너머 서석 거리는 으스스 댓잎소리... “ (이우, 눈보라 치는 밤에) 놀랍게도 시 속에는 집이 없다. 시인도 자신의 집에 살았으련만, 그의 집은 온데간데없다. 존재는 있으되 그 모습은 온전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있다면 창이나 툇마루나 정자, 지붕만이 정경 속에 묻혀 있을 뿐 집이나 바람, 구름, 달과 새와 함께 배경으로 존재한다. 집.. 더보기
한실(韓室), 전통으로 이어져야 할 우리 주택의 요소 (1) /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13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13 한실(韓室), 전통으로 이어져야 할 우리 주택의 요소 (1) 아파트가 우리 주거의 대세가 되면서 생활 방식이 좌식에서 입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침대에서 잠을 자고 책상과 식탁에서 의자에 앉아 공부하고 밥을 먹는다. 일상생활이 좌식에서 입식으로 바뀌면서 우리의 삶은 얻은 것도 있지만 잃어버리고 만 것도 적지 않다. 과연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양식 주택은 한옥의 전통을 따른 집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아서 주로 블록조로 지었다. 집의 외관은 양식이었지만 평면은 한옥의 전통을 따랐다. 평면 얼개를 살펴보면 전통 주거의 형식을 따른 것을 알 수 있는데 대청과 한실을 대체하는 마루와 안방을 살린 것.. 더보기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즐거움 /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12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12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즐거움 아파트에서 벗어나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은 어쩌면 마당을 밟고 사는 즐거움을 찾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하늘에 떠 있는 박스 안에 갇혀 사는 아파트 생활은 움직임이 거의 없어 정체된 일상이 무기력해지기 십상이다. 거실 소파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마당을 가진 집으로 옮겨가면 활기가 넘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파트에 사는 일상을 고인 물로 비유한다면 마당을 가진 단독주택은 흐르는 물과 같다. 마당은 집 내외부 공간이 이어져 각 영역마다 고유한 역할이 부여되는 기능성 외부공간이다 마당은 우리나라 주택만이 가지는 독특한 외부공간이다. 동북아시아 세 나라의 전통가옥에서 중국은 중정, 일본은 정원이 우리나라의 마당과 비교될 수 있다. 우.. 더보기
집은 전문가를 찾아내는 건축주의 안목만큼 지어진다 누구나 다 집을 지어서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집 짓기는 그야말로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라 하겠다. 그러다 보니 집 짓기를 결정하고 나면 다른 일을 젖혀 놓고 매달리게 되기 마련이다. 집 지을 땅 구하기부터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예산 짜기에서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의 벽은 생각할수록 높아진다.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 나가다가 반전문가가 되었다 싶어야만 집 짓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얼마나 좋은가?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공개된 정보만으로도 설계자를 정하기 전에 밑그림까지 그려낼 수 있다. 집에 대한 애착을 담아 모눈종이에 평면도를 그려보는 건 기본, 심지어 스케치업을 배워서 모델링까지 해내는 분도 있다. 직접 그린 도면을 건축사에게 들이미.. 더보기
지어서 사느냐?, 분양 받아서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10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10 지어서 사느냐? 분양 받아서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제주도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한해에 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합니다. 땅값도, 집값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그나마 매물이 없어서 살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제주는 지금 이주민들로 인해 홍역앓이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게 되면 질보다 양 위주로 거래가 이루어지기 쉽지요. 제주도 이주를 꿈꾸는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삶을 담을 수 있는 집을 구해서 살 수 있을까요? 내가 살 동네를 찾아서 땅을 구입하고 내 가족의 삶에 맞는 집으로 설계하여 좋은 시공자를 찾아서 완공된 내 집에 살기는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서... 최근 제주도로 이주를 계획하는 분의 주택을 설계해.. 더보기
단독주택 공사비가 궁금한가요? /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9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9 단독주택 공사비가 궁금한가요? 거의 30 년 동안 단독주택을 꾸준하게 작업을 해왔다. 설계에 앞서 건축주의 관심은 집의 규모와 공사비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몇 평 정도면 알맞은 규모가 되느냐? 평당 공사비가 얼마나 들여야 할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얼마나’의 기준도 이 시대의 집인 아파트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아파트 값이 미친 듯이 오르다 보니 단독주택 공사비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었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땅값과 공사비를 합치면 아파트에 비교해서 실랑이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집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공사비의 상한선은 여전히 건축주에게 큰 관심이 된다. 단독주택이라는 특성을 감안하지 못한 평당 공사비에 대한 건축주의.. 더보기
집도 나이를 잘 먹어야 대접을 받는데 무설자의 에세이 건축 이야기 집도 나이를 잘 먹어야 대접을 받는데 목조로 지은 한옥이나 사찰, 궁궐은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이 시대의 모습으로 쓰이고 있다. 경주 양동 마을의 한옥은 500여 년 전에 지어졌지만 주택의 용도로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시대(1376년)에 지어졌으니 무려 639 년이 지났는데도 사찰의 주 전각으로 매일 예불을 올리는 공간이 되고 있다. 건축구조체 중에서 가장 약한 재료인 나무를 써서 짓는데도 화재만 피한다면 우리나라의 집 중에서 장수하고 있는 것이 목조건축이다. 물과 불에 가장 취약하고 충해나 충격에도 늘 관리가 필요한 집이 목조건축이니 늘 눈길과 손길이 필요하다 하겠다. 구조체와 외벽을 습기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바닥에서 들어올려 주추를 놓아 가둥.. 더보기
집 이전의 집, '우리집'이라는 사회성 /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8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8 집 이전의 집, '우리집'이라는 사회성 보통 휴일을 집에서 보내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지내는 것일까? 한 주 동안 쌓인 먼지를 없애느라 집안 구석구석 털고 닦는 청소와 세탁 바구니에 가득 쌓여있는 빨랫감을 처리하는 게 우선 이리라. 그러고 나면 식구들이 기대하는 점심 식사가 주방에서 준비되느라 맛있는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친구를 초대해서 수다를 떨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회포를 풀고 있는 집도 있겠다. 단독주택 설계를 계속하다 보니 요즘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휴일의 일상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아파트에서 지내는 일상은 다 그렇고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궁금해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평일에.. 더보기
창(窓), 불이 켜져야 빛나는 존재-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7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7 창(窓), 불이 켜져야 빛나는 존재 창窓의 존재 의미를 생각해 보자. 창은 실내 공간을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환기, 채광, 일조, 조망의 목적으로 외벽을 뚫어내어 설치한다. 그다음으로는 예쁜 집을 만들기 위해, 즉 아름다운 외관을 디자인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 건축물의 창은 사람 얼굴로 보자면 눈에 해당되니 안에서 밖을 보는 기능보다 외관을 꾸미는 디자인 요소로 우선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창을 만들 때 우선순위를 따져보면 당연히 기능적인 부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설계자의 디자인 의도를 따라 외관을 구성하는 요소로 쓰이고 만다. 그러다 보니 전면을 모두 창으로 내기도 하고 동, 서쪽 벽에 큰 창을 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너무 넓은.. 더보기
디자인이 눈에 띄는 집을 짓고 싶으신가요?-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6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6 디자인이 눈에 띄는 집을 짓고 싶으신가요? 마음먹고 단독주택을 지으려는 사람은 대체로 어떻게 하면 색다른 집을 지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가 봅니다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검색은 물론이고 주택관련 책을 여러 권 구입해서 뒤져보지만 마음에 꼭 드는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푸념하는 분이 많더군요. 우리집을 이색적으로 짓게 되면 주목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집이 가져야 할 보편성을 세세히 따져보지 않으면 일상생활에서 불편하게 살아야 할 함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단독주택의 얼개는 집집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비슷해 보이는 집이 많아 보입니다. 일층에는 거실과 주방, 안방이 자리하고 이층에는 방이 두 개 정도 들어가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구성이라.. 더보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작년에 출강했었던 모교의 후배이자 제자들이 사무실을 찾아 왔습니다. 십년 넘게 겸임교수로 강의를 나가다가 3년을 쉬었는데 선배 교수의 요청으로 강의를 다시 시작했지만 한 학기로 그만 두었습니다. 쉰의 고개를 넘기고 보니 교수들도 후배, 외래교수들도 제자들인데다 학생들과는 30년이 넘는 세월차라 어울리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한 학기 제 수업을 받았던 자식이라도 막내같은 학생들이 잊을만 하면 찾아 옵니다. 이 녀석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 한 잔하는 재미는 자리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재잘 재잘 떠드는 아이들과 잔을 나누면서 어울리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어지간한 시름은 싹 사라집니다. 오늘 찾아온 아이들 중에 한 녀석이 선물이라며 조그만 꾸러미를 내밀었습니다. "교수님, 나중에 열어.. 더보기
열두 평짜리 작은 집에서 읽어낸 행복 이야기 무설자의 에세이 집 이야기 150203 열두 평짜리 작은 집에서 읽어낸 행복 이야기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 아파트에서 벗어나서 전원에서 살고 싶은 꿈을 꾸는 사람이 많습니다. 닭장이라는 표현을 하면서도 벗어날 대안이 없어 아파트에 살 수밖에 없는 게 이 시대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전원 생활을 그리워 하지만 도시를 벗어 나기가 쉽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이미 익숙해진 삶에 순종하고 말지요. 그렇지만 용기있는 젊은이들은 귀농을 감행하고 직장 생활을 끝낸 중년들은 귀촌을 결심해서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합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삶터를 옮겨 살아보면 땅을 밟고 산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됩니다. 바쁘게 살아온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느리게 살아야 하는 시골 사람으로 변한다는 게 애당초 가당치 않.. 더보기
길타령-광복로에서/계간 예술문화비평 2014년 가을호 길타령 김정관 건축사, 수필가/도반건축사사무소 대표 길이 없어서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김기택 시인의 시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를 읽으며 새보다 땅을 많이 밟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땅을 거의 밟지 않는 사람들은 주로 지상에서 몇 십 센티미터에서부터 수십 미터 높이에 떠서 사는 셈이다. 새보다도 땅을 다 많이 밟고 산다는 건 길 걷기를 좋아하고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걸 이르는 것이렷다. 날개 없이도 그는 항상 하늘에 떠 있고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를 나설 때 잠시 땅을 밟을 기회가 있었으나 서너 걸음 밟기도 전에 자가용 문이 열리자 그는 고층에서 떨어진 공처럼 튀어 들어간다. 휠체어에 탄 사람처럼 그는 다리 대신 엉덩이로 다닌다. 발 대신 바퀴가 땅을 밟.. 더보기
처마가 없어서 박복한 집?-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5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5 처마가 없어서 박복한 집? 나무로 지은 한옥은 수백 년 세월을 지내면서 지금도 집으로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니 의아스럽다 못해 신기하기도 합니다. 철근콘크리트로 짓는 요즘 집은 백년은 고사하고 몇 십 년만 지나도 보기에도 흉할 뿐 아니라 안전에 문제가 있다며 골치를 싸맵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재료로 비교하자면 나무가 철근콘크리트에 비해 형편없이 약한데도 어떻게 해서 그럴까요? 부석사 무량수전은 1376년에 지어졌으니 60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지금도 건재하게 주전각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돌이나 벽돌로 지었다면 모를까 물성이 약한 나무로 지어졌는데도 아름다운 외관으로 집의 기능을 여전하게 다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요? 나무로 만든 집은 백년의 .. 더보기
사람을 쫓아내는 집, 불러들이는 집 나의 첫 주택 작업이었던 부산 해운대 ‘관해헌’의 건축주가 새 집을 지어야 한다며 찾아왔다. 이십 년을 그 집에 살다가 집을 팔았다며 양산에 집터를 잡았다고 했다. 관해헌은 거실을 사랑채처럼 본채에서 떨어뜨려 배치해서 마치 정자에서 해운대 먼바다가 보이도록 설계가 된 집이다. 집을 지을 당시 건축주는 건설회사 임원이었다 보니 업무상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집이 다 지어지고 나니 밖에서 하던 밤모임(?) 장소가 집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보고 관해헌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손님을 불편 없이 집에서 맞을 수 있다는 특별한 라이프스타일이 아파트에서 살았을 때와 다른 이 집만의 자랑거리 중에 제일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랬던지 그 집을 탐내는 사람이 많아.. 더보기
애인 같은 집, 배우자 같은 집-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3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3 애인 같은 집, 배우자 같은 집 우리 식구들이 행복하게 살 단독주택을 애인과 배우자에 비유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연애 상대로 사귀는 애인과 평생을 한 집에서 사는 배우자는 분명 그 선택의 기준이 다를 것이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람과 연애만 하겠다는 사람을 바라보는 성향이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애인은 아무래도 속마음보다 겉모습에 치중해서 찾게 될 것이다. 연인 관계가 시작될 때야 매일이다시피 만난다고 하지만 잠깐 시간을 같이 할 뿐이니 깊은 속내를 알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내 애인은 이렇게 멋진 사람이라며 남에게 자랑할 겉모습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하지만 배우자의 선택은 분명 애인과는 달라야 한다. 연인 시절에는 한시라도 떨어지면 못 .. 더보기
얼빠진 집과 얼을 채우는 집-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2 얼빠진 집과 얼을 채우는 집 요즘 가문(家門)⦁가풍(家風)⦁가장(家長), 이 말들은 그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나 싶다. 이렇게 되어 버린 건 아마도 가정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탓이라고 본다.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하는 식구들의 일상적인 대화가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전에는 집안에 대대로 이어 오는 풍습이나 예의범절을 중심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집안에서 배웠다. 집이라는 사회의 기초 구성체가 흔들리면서 가정교육이 없이 이루어지는 학교교육은 뿌리 얕은 나무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학교 교육마저 입시 학원처럼 가르치고 있으니 우리 사회는 도덕이나 예절은 어디에서 배워야 할지 알 수 없다. 가정교육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얼’을 심어주는 바탕이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지식만 주입.. 더보기
다시 찾아야 할 '지어서 써야 하는 것'에 대하여-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1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1 다시 찾아야 할 ‘지어서 써야 하는 것’에 대하여 흔히 쓰는 말이지만 ‘만든다’와 ‘짓는다’는 큰 차이가 있다. 옛날에는 옷과 음식, 집은 지어서 썼으며 약과 글, 농사도 짓는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옷도 만들어진 것을 사서 입으며 음식마저도 만들어서 파는 것을 사먹을 뿐 아니라 집도 만들어서 파는 집을 분양받아서 산다. ‘짓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1.재료를 들여 밥, 옷, 집 따위를 만들다. 2.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약을 만들다. 3.시, 소설, 편지, 노래 가사 따위와 같은 글을 쓰다.’라고 나와 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와 약, 글은 '만든다'로 쓰지 않고 '짓다'로 따로 쓰고 있다. 이렇게 살펴보니 정성을 들여 만들어 쓰는 건 짓.. 더보기
우리집은 안녕하신지요?-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프롤로그2 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프롤로그2 우리집은 안녕하신지요? 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리움, 포근함, 돌아가야 하는 곳, 편히 쉴 곳... 우리가 '집에 간다'고 할 때 그 집은 물질적인 건물인 house가 아니라 정서적인 집인 home 이라는 것이지요. 아침에 집을 나서서 일터나 학교가 파하면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서둘러 돌아오고 싶은 그 집입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저녁이 되면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밥 짓는 냄새가 온 동네에 가득했었지요. 밥 때가 되면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리면 아무리 재미있게 놀다가도 각자 집으로 돌아갔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집이 주는 이미지는 고향이고 엄마로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입대를 해서 논산훈련소 시절, 야외교장.. 더보기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시민건축대학 초청강연회 제3강, 세상에서 하나 뿐인 우리 집짓기 2013년 부산국제건축문화제 시민건축대학 초청강연 제3강, 강연원고 세상에서 하나 뿐인 ‘우리집’ 짓기 도반건축사사무소 김 정 관 왜 집을 ‘만든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 했을까? -정성을 들여 만들어야 행복할 수 있는데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요소인 의식주인 옷과 밥, 집은 ‘만든다’라고 하지 않고 ‘짓는다’라고 쓴다. ‘짓다’라는 말을 어디에 쓰는지 사전에서 살펴보니 ‘사람의 의식주와 관련된 것을 재료를 들여 만든다.’라고 되어 있다. 하필이면 의식주와 관련된 것에 ‘짓는다’라고 쓰는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또 ‘글’을 짓고 ‘약’을 짓고 ‘농사’를 짓는 것이니 ‘짓다’를 붙이는 목적어는 생활의 근본이 되는 의식주와 함께 정성을 다해서 해야 하는 일에 ‘짓다’를 붙여서 쓰.. 더보기
목조기와집으로 사찰짓기를 계속하는 불교의 미래는? 인연이 오랜 H스님이 회주로 계신 절의 큰 법당 준공법회에 초청장을 받아서 먼길을 나서게 되었다. 그 절은 충청북도 충주에 있으니 부산에서는 거의 400km에 이르는 먼 길이다. H스님과는 일년에 한번도 만나지지 않으면서도 30년 가까운 시간의 인연을 지속해 왔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H스님이 충주에서 절을 시작했을 때 다녀왔었는데 참 허술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불사를 진행했는지 궁금하였다. 학자 풍의 잔잔한 호수물결같은 성품을 지닌 그 스님은 소위 말하는 '중냄새'가 나지 않아서 출가자의 면모가 아직 느껴지는 분이었다. '중냄새'...비구계만 받고 나면 공부에는 관심을 끊고 승복을 벼슬아치들의 관복이나 되는 것처럼 행세하는 모습을 이르는데 참 드물게도 출가한 세월이 얼마인데.. 더보기
일하는 것과 그 대가를 받는 법 스님의 계산법 어떤 스님이 있었다. 이 스님은 가는 절마다 주변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논이나 밭으로 만들었다. 그 스님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분이었지만 사실은 절의 어른이었다. 그 스님이 절 주변의 땅을 소일 삼아 개간하여 논이나 밭을 만들어지고 나면 그 논밭은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 싼 값으로 건네졌다. 부산의 어느 절에 있을 때도 그 스님은 여름 내내 비지땀을 흘려가며 황무지를 밭으로 만들었다. 밭이 만들어지자마자 절 아랫마을의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자신에게 팔라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스님이 계산에 어둡다는 것을 알고는 아주 싼 가격을 제시했다. 스님은 그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는 그 논밭을 그 사람이 제시한 가격으로 넘겨주었다. 그 스님은 절의 재무스님을 불러 밭을 팔았다고 하면서 돈을.. 더보기
理判과 事判의 사이에 서서 겨울은 계절이 속도 조절하는 계절이다. 여름날, 뙤약볕이든 태풍이든 끝없이 내리던 장맛비든 서두르듯 양으로 내닫다가 찬바람 앞에서는 그 분위기가 가라앉고 만다. 그리고 겨울,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고 봄을 위해 휴식을 취한다. 사람도 겨울이면 한 해의 끝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새로운 날을 위해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진다. 예순을 넘은 내 나이는 겨울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엇을 해도 끝을 보고 성과를 장담하던 그 열정의 시간이 이제는 내 것이 아니다. 며칠 밤을 새워도 끄떡없던 체력도 이제는 하룻밤을 장담하기 어렵다. 친구들끼리 소주 한 잔 하는 자리에서도 건강 얘기가 빠지지 않으니 여름 같은 열정의 나이는 이미 지나 버렸다. 나에게 겨울이란 어떤 의미인가?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지금 나.. 더보기
중국 어학연수길에 나선 딸에게 중국 어학연수 길에 나선 딸에게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비행기 안이겠구나. 잠깐 여행이 아니라 일년을 살기 위해 중국으로 가고 있는 네 머리 속에는 온갖 생각이 가득할 것이다. 집을 떠나고 학교를 떠나고 네가 만나던 사람을 떠나는 자리이다. 여자 나이 스물둘이면 이제 스스로 서기 위한 마음가짐이 확고해야 하겠지만 아직도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지 불안하기만 할 것이다. 인생은 예정된 길을 간다고 믿는 것이 아빠의 요즘 생각이다. 그 예정된 길이라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자신의 의지보다는 어떤 큰 힘에 의해 밀려서 살아온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너에게 예정된 길 중 중국에서 살아보는 길에 들어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누구나 앞날을 알 수 없기에 스.. 더보기
건축을 전공하고 있는 자식 자랑 건축을 전공하고 있는 자식 자랑 자식자랑은 푼수나 하는 짓이라고들 합니다. 자식자랑과 아내자랑이 합쳐지면 온 푼수, 한 쪽만 하면 반 푼수라지요. 그래도 반 푼수가 되는 걸 각오하고 자식자랑 좀 해야겠습니다. 건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제 아이가 올해 부산국제건축문화제에서 주관하는 디자인 워크샾에서 2등으로 입상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온 학생들로 구성된 30개 팀이 경합하여 그 결과를 만들었으니 자랑할만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그동안 좋은 대학 못 갔다는 이유로 이렇게 저렇게 구박을 많이 받았었지요. 제 자신이 더 힘들었을 텐데 내 얼굴 깎였을까봐 그렇게 못난 짓을 했었나 봅니다. 다들 자식 키우면서 진정으로 자식을 위한 일을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부모얼굴에 훈장 만드는 일을 자식.. 더보기
오래된 집, 텃밭과 마당을 바라보며 오래된 집, 텃밭과 마당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내가 살고 있는 집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물려준 사십 년 묵은 이 집에서 고2부터 지금까지의 내 삶이 엮어져 왔습니다. 청춘이 지나 사십대 중반에 와 이제는 내 아이가 고3이 되어 있으니 한세대를 산 것이지요. 이 곳으로 이사 올 때 이 근방에서는 최신 유행의 가장 좋은 집이었는데 이제는 나이를 먹어 낡은 집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시간이 사람을 키우고 나무도 키웠지만 집은 황폐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옥상에 방수처리가 상해서 비가 새고 낡은 창문은 약한 바람에도 덜컹거립니다. 몇 번 칠한 페인트도 오래되어 외관은 흉하기 짝이 없습니다. 마루바닥도 상해서 내려앉고 비 새는 벽에는 곰팡이도 보입니다. 집 밖에 있는 화장실, 세면장도 이제.. 더보기
발코니 있는 아파트라야 吉宅길택 모 신문사에 기고원고로 썼는데 원고가 밀려있다해서 게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써 놓은 글이라 블로그에 올려 봅니다. 먼저 올린 글의 후편이라고 할까요? 이제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발코니 있는 아파트라야 吉宅 김 정 관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사람이 만든 구조물 중에서 만리장성이 먼저 보인다고 했던가? 우리나라를 보면 어떨까? 아마 아파트만 보일지도 모른다. 시골에서 도시까지 거의 아파트가 원시시대의 공룡처럼 전 국토를 점령하고 있다. 노태우 정권 때 200만 호 공급이라는 물량 위주로 지어내다가 이제는 질적으로도 많이 나아져 괜찮은 주거 공간으로 정착이 되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아파트가 제대로 사람이 살만한 집일까라는 고민은 별도의 화두로 두어야 할 것 같다. 특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