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전공하고 있는 자식 자랑
자식자랑은 푼수나 하는 짓이라고들 합니다. 자식자랑과 아내자랑이 합쳐지면 온 푼수, 한 쪽만 하면 반 푼수라지요. 그래도 반 푼수가 되는 걸 각오하고 자식자랑 좀 해야겠습니다.
건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제 아이가 올해 부산국제건축문화제에서 주관하는 디자인 워크샾에서 2등으로 입상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온 학생들로 구성된 30개 팀이 경합하여 그 결과를 만들었으니 자랑할만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그동안 좋은 대학 못 갔다는 이유로 이렇게 저렇게 구박을 많이 받았었지요. 제 자신이 더 힘들었을 텐데 내 얼굴 깎였을까봐 그렇게 못난 짓을 했었나 봅니다. 다들 자식 키우면서 진정으로 자식을 위한 일을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부모얼굴에 훈장 만드는 일을 자식 위한답시고 하고 있지는 않는지.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여자아이가 전교어린이회장을 했으니 꽤 촉망받는 녀석이었지요. 하지만 조그만 여자 아이가 회장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나 봅니다.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그만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고 합니다. 외동이었던 녀석은 친구들로부터 외면당한다는 것이 너무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큰일을 녀석은 스스로 극복해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아이의 행동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남들과 다른 모습을 가지는 것을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에만 열심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공부도 소홀할 뿐 아니라 리더십이 강한 녀석이 임원을 맡는다든지 하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로서는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이 제 자신을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3학년이 되면서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공부의 기초를 닦는데 소홀했던 지난 2년은 학업을 제 궤도에 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부반장을 하면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남다른 노력을 했지만 성적을 목표로 하는 선까지 끌어올리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특목고인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입니다.
영어를 전공으로 하고 중국어를 부전공으로 하는 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중학교에서 중상위권에 들어가는 아이들이 입학하는 이 학교에서 제 나름으로는 열심히 했지만 부모가 원하는 대학을 들어가기에는 성적이 미치지 못하였지요. 그리고 3학년이 되었습니다.
“아빠 제가 건축을 하면 어떨까요?”
예상치 못한 건축을 전공해보겠다는 질문에 저는 뭐라고 딱 부러지는 얘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공부를 해내기가 너무 힘이 드는데다가 소위 말하는 ‘돈 안 되는 직업’이 바로 저의 직업이자 아이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원한다면 한 번 해봐라”
부모의 직업을 선택하겠다는 자식에게 ‘네가 원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던 이유는 노력에 비해 경제적인 부가가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제 스스로에게는 열심이었지만 집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이 살아온 아버지의 일이 어떤 면에서 좋아 보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부모들은 자식에게 어떤 조건에 의해 대학의 학과를 선택하게 하는 것일까요? 특별한 철학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소위 말하는 경제적인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권하겠지요. 취직이 잘 되는 일이나 평생직장을 보장받는 공무원, 교직 혹은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길 등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건축을 전공한다는 이 길과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길은 거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대학에서 배우는 건축은 경제적인 이윤을 우선하는 생존적인 방법론보다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부를 우선하는 것입니다.
다른 학과에서는 4년을 배우면 되지만 건축학과는 5년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것도 학기 중에는 거의 밤을 새다시피 공부에 매달려야 하고 그 성과도 투자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평가가 산술적인 기준이 아닌 감성적인 그것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졸업 후의 진로도 노력에 비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많은 졸업생에 비해 그들이 취업해야 하는 직장은 그렇게 안정적으로 준비되지 않습니다. 이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아비의 입장에서는 건축가의 길로 권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그 공부를 아주 열심히 잘 해내는 것을 지켜보는 저의 입장은 아주 대견할 뿐 아니라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며칠 후면 우리 아이는 1년 과정의 교환학생으로 중국 운남에 가게 됩니다. 대부분 중국어과 학생들인데 건축학과로 신청하여 선발이 되었습니다. 선발이 되고 난 뒤에 두어 달 남은 기간을 한달은 중국어 학원에 다녔고 거기서 집중적으로 회화를 공부했습니다. 속성으로 배운 회화를 이번 워크샾에서 잘 써 먹은 모양입니다. 사실 입상까지는 바라지도 않은 모양인데 그런 결과를 얻어낸 모양입니다.
더구나 소속된 스튜디오에 지도하는 중국인 교수들 뿐 아니라 참가한 중국학생들과도 잘 사귀어서 연락처를 주고받은 모양입니다. 워크샾에서 중국어도 자신감을 얻고 사람도 사귀고 입상까지 했으니 도랑치고 가재도 잡은 격이라며 아주 기뻐합니다.
건축만 공부해도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닌데 미래를 위해 어학까지 갖추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여간 대견스럽지 않습니다. 무한경쟁 시대에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세계를 향한 폭넓은 행보가 국제화시대를 살아가는 경쟁력의 좋은 시도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각론적인 면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고 그 속도감을 타고 있지 못하는 세대에 속해 버린 것 같습니다. 나는 우물 안에 있고 아이는 그 밖의 넓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변할 수 없는 건축에 대한 총론은 식지 않는 열정일 것입니다. 건축이란 삶을 담아야 하기에 아무리 건축의 각론적인 환경이 변해 간다고 해도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결여된다면 그 건축은 생명력을 상실한다할 것입니다. 어쩌면 건축을 배우기 전에 삶을 이해하는 공부가 우선되어야 할 것인데 이 부분은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 같습니다.
내 아이가 선택한 아버지가 가고 있는 길, 건축이라는 이 화두를 공유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아직은 아이가 묻는 질문에 답을 내려주기는 하지만 그 답이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이가 가는 길이 삶으로서의 건축인지 세상의 트랜드를 타는 건축인지에 따라서 그 답의 유효시한이 결정될 것 같습니다.
아이는 며칠 후 중국으로 떠납니다. 일년간 우물 밖에서 아버지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큰 세상의 많은 것을 얻고 오길 바랍니다. 지금 미국과 어깨를 겨루며 세상을 움직이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언어를 배우는 것과 함께 자신의 미래도 함께 찾아오길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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