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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행복한삶을담는집이야기

혹시 각방 쓰시나요?

各房각방을 사전에 찾아보았다. 저마다 따로 쓰는 방이라고 딱 나와 있다. 이 단어가 사전에 올라와 있는 게 생소했다. 용례를 찾아보니 ‘그들은 부부 관계마저 포기한 채 각방을 쓴 지 오래다.’라고 나와 있으니 '각방'이 긍정적인 단어가 아닌 건 분명하다.

 

우리 부부도 공식적으로는 방을 따로 쓰지는 않지만 아내가 내 옆에서 자지 않은지는 제법 되었다. 우리집 침대는 킹사이즈라서 셋이 누워도 될 크기인데 언제부턴가 불편하다며 아내는 거실로 잠자리를 옮겨 버렸다. 침대를 수면용(?)으로만 쓴 지 오래라서 별문제는 없지만 어쨌든 나와 아내는 잠자리를 따로 쓰고 있다.

 

 

각방 쓰시나요?

 

부부가 한 방을 쓰지 않고 따로 방을 쓰는 집이 많다고 한다. 우리 부부처럼 나이를 많이 먹은 경우에는 어쩌면 잠자리를 따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방을 아예 따로 쓰는 각방은 경우가 다르다.

 

각방을 쓰게 되면 ‘우리’라는 의미를 담았던 '부부의 공간'이 사라지게 된다. 부부가 한 집에서 사니까 우리집은 유지되지만 니방 내방으로 나뉘면서 일상을 공유하는 분위기가 옅어지게 될 것이다. 얼굴을 마주 보며 지내야 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각방살이가 무서운 건 말없는 사이가 되기 쉽다는 데 있다.

 

아파트에 살면 집에서 TV 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별로 없다. 부부로 맺어지면서 약속했던 건 두 사람의 인생을 한 방향으로 보며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살다 보면 한 방향으로는 TV만 본다고 한다. 부부로 살면 당연히 같은 방향, 한 방향으로 인생행로를 맞춰야 하는데 TV 보는 것만 한 방향이라면 문제가 있지 않은가?

 

부부가 삶의 행로를 한 방향으로 보는 걸 놓치지 않으려면 일상에서 대화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각방을 쓰면서 대화가 줄거나 아예 말을 섞지 않게 된다면 서로 살아가는 방향을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러면 우리집이라는 배가 항로를 잃어버려 떠돌고 있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집이라는 배의 선장은 누구?

 

세상이 변하면서 死語사어가 된 말로 家長가장과 主婦주부를 들 수 있다. 집의 주도권이 무조건 남자였던 때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여자는 살림을 하는 역할로 일컫던 말이 주부였다. 그렇지만 맞벌이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세상이라 집안일은 나누어 하는 게 당연하게 여긴다.

 

가장이라는 지위가 사라지고 주부라는 역할도 없어지고 나니 가정사의 주도권은 대부분 아내에게 넘어오는 집이 많다. 물론 이런 가정사의 변화를 긍정 부정으로 구별해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각방을 쓰게 되면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신축 아파트 평면을 보면 점점 안방이 비대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만약 각방을 쓰게 되는 부부는 어떤 합의에 의해 누가 안방을 쓰게 될지 궁금하다.
 
 

부부가 각방을 쓰게 된다면 안방을 차지하는 쪽과 뺏기는 쪽의 생활 여건은 너무 달라지지 않을까? 친구끼리 공동 경비로 여행을 갔는데 방을 따로 쓰기로 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스위트룸을 쓰고 다른 사람은 공용욕실을 쓰는 게스트룸을 쓰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이건 말이 안 되는 얘기일 텐데 아파트의 각방 쓰기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 분양한 아파트의 평면도를 찾아보시라. 안방은 더 커지고 디럭스 하게 진화되었으나 다른 방들은 현관 앞의 문간방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자...부부가 각방을 쓰기로 합의를 보았으나 누가 안방을 써야 할까? 당연히 ‘우리집호’의 선장님이지.

 

 

우리집에는 안방이 없다

 

지금 작업 중인 단독주택은 안방 없는 집으로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안방을 없애는 설계를 하는 게 아니라 식구들이 평등하게 쓸 수 있는 집을 짓는 일을 하는 것이 맞겠다. 분양받아 살아야 하는 아파트에서는 권위적인 안방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내 집을 지어 산다면 평등한 집을 이루어낼 수 있다.

 

단독주택을 설계하면서 양산 심한재에는 부부 침실 영역으로 조닝 하면서 욕실을 공유하는 같은 크기의 방 두 개를 두었다. 부부가 방 하나를 쓴다면 다른 방은 서재로 쓰게 될 것이다. 부부 침실 영역은 중문으로 프라이버시가 확보되니 각방을 쓰지만 남편과 아내의 일상이 공유된다.

 

 

필자가 설계한 경남 양산 심한재. 설계: 도반건축사사무소, 시공: 니드하우스. 일층은 부부 영역이며 이층은 아이들이 쓰는데 나중에는 손주의 침실이기도 하다.
 

 

지금 설계가 진행되고 있는 상가주택의 단독주택에도 부부 침실 영역을 조닝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추후 라이프사이클 프로그램에 따라 아이들이 독립해 나가게 되면 중문을 달아 침실영역을 확보할 수 있게 계획하였다. 물론 지금은 아이들이 어느 방을 쓰더라도 부부의 방과 다름없는 평등한 식구들의 주거 생활이 가능한 모두의 '우리집'이 된다.

 

 

필자 도반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 중인 부산 명지동 상가주택 삼층의 단독주택 평면, 안방이 따로 없으며 훗날에는 왼쪽 방 두 개가 부부영역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파트에서 안방이라는 영역은 너무 위압적인 공간이다. 다른 방에 비해 너무 크고 권위적인 공간이라 한 사람이 전용해서 쓰는 건 불평등하다. 부부가 각방을 쓰는 게 보편적인 주거 생활이 되어가는 세태에 왜 아파트는 맞춰주지 못하는 것일까?

 

 

전원에서든 도시에서든 내 집을 지어 살 수 있다면 꼭 온 식구가 평등하게 방을 쓸 수 있도록 설계해서 지었으면 좋겠다. 부부가 평생을 한 방을 쓰며 살 수 있다면 그만한 축복이 없을 터이다. 방을 따로 쓰는 각방살이를 했는데 부부 중 한쪽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걸 다음 날 아침에 알게 되었다는 얘길 들었다.

 

부부가 각방을 쓰는 건 이제 숨길 일이 아닌 보편적인 주거 생활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아파트 방의 불균형 내지 불평등은 부부가 평등한 일상을 지내지 못하게 한다. 문간방 두 개를 각각 쓰고 안방은 비워서 게스트룸으로 쓴다면 모를까?

 

무설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단독주택이나 상가주택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 kahn777@hanmail.net

전화: 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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