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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행복한삶을담는집이야기

발코니는 아파트에서 마당

한 달에 두어 번은 우리집에 손주가 온다. 출가한 자식과 가까이 사는 건 노후의 삶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라는 걸 심감하고 산다. 요즘은 자식들이 결혼만 해주어도 다행인데 손주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푸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집은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는 손녀를 주말마다 기다리니 주변에서 이런 자랑을 하려면 밥을 사라며 부러워한다.

 

손주가 우리집에 오면 맨 먼저 달려가는 곳이 발코니이다. 우리집 발코니 한쪽에는 계절마다 색깔이 다른 꽃이 피어나고 상추와 쑥갓, 아삭 고추도 자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장독에는 아내가 담은 간장이 담겨 있어 우리집 장맛을 지켜간다. 손주가 다니러 오면 아장아장 오가며 꽃구경하는 걸 보는 재미도 발코니가 없는 아파트에선 꿈도 못 꾸는 장면이다.

 

 

구축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어진 지 20년이 지난 소위 구축 아파트이다. 집값이 미친 듯이 뛰었던 때도 우리 아파트 거래 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값이 바닥이 어디냐며 떨어지면서 난리도 아니지만 남 이야기일 뿐이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아파트 시세에도 우리 아파트는 한결같은 일상을 지낼 뿐이다.

 

우리 아파트 주민만 아는 얘기지만 새 아파트를 찾아 이사를 했던 사람들이 다시 되돌아온 경우가 적지 않다. 아파트 뒤편이 숲이 좋은 산에 면해 있고 정남향에 앞이 툭 트여있어 이만한 주거 여건이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도보로 십 분 정도 걸리는 지하철역까지 경사진 길을 잠깐이지만 걸어 오르는 게 좀 힘들다는 것 말고는 전원주택 부럽지 않은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다.

 

 

 

 

거울 햇살은 거실 깊숙이 집 안으로 들여주고 여름 햇볕은 거실 문지방을 넘는 걸 허락지 않는다.

 

 

 

우리 아파트는 소위 투베이 평면에다 욕실도 하나밖에 없으니 오리지널 구축 아파트이다. 그렇지만 남향 햇살이 잘 드는 발코니는 신축 아파트에는 없는 소중한 외부 공간이다. 겨울 햇살은 발코니를 넘어 거실 깊숙이 들어오고 여름 햇볕은 거실 문지방을 넘어오지 않는다.

 

우리 아파트의 발코니는 폭이 1.2미터 밖에 안 되는 좁은 외부 공간이지만 발코니 없는 새 아파트가 부럽지 않다. 이제 도시에서는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서 산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발코니가 없는 신축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그네가 집 아닌 집에 살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몰라.

 

 

집이 다르니 사람도 다른 한중일 세 나라

 

우리나라에서 집이라고 하면 건축물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 담장이 둘러진 마당까지 집의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 한옥에는 마당이 있고 일본 집에는 정원, 중국의 전통가옥인 사합원에는 중정이 있다. 한중일 세 나라 주택의 내부와 외부 공간을 잘 살펴보면 주거 문화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꽌시關係’라는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매우 중시한다고 한다. 중국인은 자신과 관계없는 남에게는 무신경하지만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철저히 예의를 지키면서 마음을 다한다고 한다. 집을 대지 경계에 딱 붙여졌고 밖으로 창문 없이 폐쇄적이며 내부는 중정을 중심으로 개방되어 있는 사합원을 보면 중국 사람들이 왜 ‘꽌시’라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백토가 깔린 한옥의 마당과 골목길과 경계를 이루는 나즈막한 담장은 온 동네 사람을 이웃 사촌으로 살 수 있게 했다.
 
 

 

한옥에는 마당, 중국 사합원에는 중정, 일본집에는 정원으로 외부 공간을 쓴다.

 

 

 

일본은 건물과 외부 공간의 연관성이 없다. 현관을 통해 집 안으로 들면 외부를 향해 복도가 둘러져 있는데 방은 그 안에 모아서 배치되어 있다. 방과 방 사이는 얇은 벽이나 문으로 구획되어 있어 프라이버시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일본 사람들은 이런 집의 특성으로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하며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깍듯한 모습은 겉치레일 뿐이라고 얘기하는 데 이런 주거 생활을 알면 이해가 된다. 외부 공간은 내부 공간과 연관성이 없으므로 정원으로 꾸몄는데 시각 문화가 발달된 일본 사람들의 정서를 주거 생활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도 달라진 옛날과 지금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특징은 마루를 통해 내부 공간을 이동할 수 있고 각 방에서 마당으로 바로 나갈 수도 있다. 좌식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는 일본의 주거 생활과 같다. 그렇지만 구들온돌난방으로 방바닥을 데우는 우리의 전통주택은 방의 배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가족들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었다.

 

옛집인 한옥을 보면 알 수 있는 데는 한 집에서 4대가 함께 살아도 가족구성원이 쓰는 방은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었다. 남편이 쓰는 사랑채와 아내가 주축이 되어 관리되는 안채의 영역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어 손님이 며칠 씩 숙식하며 지내더라도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게 생활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주거는 집의 안팎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건물은 대지의 가운데 배치하고 사방으로 기능성 마당이 내부 공간과 연계된다. 부엌 옆에는 정지마당, 대청은 안마당, 사랑채는 사랑마당이 있고 방마다 마루를 통해 마당으로 드나든다.

 

 

발코니마저 없는 아파트는 이웃은커녕 식구라는 관계도 지워 버려 각방을 쓰는 개인만 남겨 버렸다.

 

 

 

마당과 외부는 담장이 둘러져 경계를 삼는데 담의 높이는 1.5미터 정도로 까치발을 하면 안팎을 살필 수 있다. 오래전에는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할 정도로 한 동네 사람들은 아우러져 살았다. 이런 개방적인 한국인의 심성은 우리 한옥의 마당과 낮은 담장의 역할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아파트라는 집에 살게 되면서 우리네 삶은 어떻게 되었는지 돌아보자. 엘리베이터를 같이 쓰는 주민들끼리도 인사마저 나누지 않고 산다. 삼대가 한 집에 사는 건 고사하고 자식들과 한 집에 사는 것도 대학생이 되기까지 일 뿐이다.

 

집에 손님을 청하거나 내가 손님으로 남의 집에 갔던 기억이 있는가? 손주가 있기는 하지만 한 해에 몇 번이나 보고 사는지 모를 일이다. 마당 없는 집, 아니 발코니마저 없는 아파트는 한 동네 사람이라는 이웃의 개념을 각방을 쓰는 개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정남향에 발코니가 있는 구축 아파트인 우리집, 장독에는 장이 잘 익어가고 있고 철마다 다른 꽃이 피고진다.

 

 

이제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산다는 건 언감생심이라 아파트에 살 수밖에 없으니 발코니는 꼭 있었으면 좋겠다. 넓은 발코니가 있으면 마당 삼아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화초나 채소도 기를 수 있는 정원도 되고 우리 집처럼 작지만 마당 삼아 장독을 두고 장도 담글 수 있다.

 

코로나가 이제 끝난 듯 하지만 언제 또 집에서만 갇혀 지내야 할 날이 올진 아무도 모른다. 마당처럼 쓸 수 있는 폭이 넓은 발코니만 있으면 아파트도 ‘이 시대의 한옥인 우리집’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마당 삼아 쓸 수 있는 널찍한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좀 공급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무설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 kahn777@hanmail.net

전화: 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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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는 아파트에서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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