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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행복한삶을담는집이야기

우리집은 마땅히 이런 곳이어라

투명인간의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는 집이야말로 힘든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며,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타향에 살면서 힘들 때 집을 떠올리면 눈물과 함께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이가 들어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데 그건 어린 시절의 ‘우리집’에 대한 그리움이 주는 안식 효과일 터이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집은 말 자체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미소가 지어지게 한다. 집을 영어로 번역하려면 Home과 House로 구분해야 한다. Home은 가정, House는 가옥으로 나누어지지만 우리말은 그냥 집으로 통칭해서 쓴다. 집이라는 말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건 분명 House가 아니라 Home일 것이다. ‘어떤 집’에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던 집’이었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집이야말로 힘든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며,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

 

 

 

누구나 지난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게 했던 일과 사람이 있다. 인자한 엄마일 수도 있고 과묵했지만 우리집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아버지가 그 사람인 집도 있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어려웠던 지난 시절은 한 집에서 적지 않은 식구들이 서로 배려하고 희생하면서 버텨내다시피 살았다.

 

우리가 집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와 눈물을 짓게 되는 건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볼 거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집은 힘든 인생의 안식처

 

‘집이라면 모름지기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명제가 주어진다면 ‘안식처’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라는 노랫말처럼 우리집이 아니면 그 어디에서 편히 쉴 수 있겠는가? 집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그 누구에게든 안식처가 되어여 하며 또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 우리네 삶을 돌아보면 집이 과연 안식처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밤이 이슥한 시간인데도 불이 꺼져 있는 집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일이 마쳐지면 누구나 집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불이 켜지지 않고 있다는 건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게 아닌가?

 

 

 

 

밤늦도록 불이 켜지지 않는 집들을 지켜보면 어쩌다 그러는 게 아니다. 그 집들에 초저녁에 불이 켜지는 건 드문 일이다. 이런 집이 날이 갈수록 느는 게 요즘 우리의 현실인 것이 참 서글프다. 이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집이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닐지도 모른다.

 

집이 안식처가 되려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이 마쳐지면 서둘러 돌아가야 할 곳은 당연히 집이고 저녁밥을 같이 먹을 식구가 기다리고 있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는 건 저녁에 집에서 식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지 않은가?

 

 

집은 사랑을 나누는 곳

 

웃음소리가 담을 넘는 집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이제 다들 아파트에 사니 담을 창으로 고쳐 써야겠지만 층간 소음으로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웃음소리면 좋겠다. 아무리 식구라도 늘 웃으며 지낼 수 없으니 가끔은 다투기도 하겠지만 그날을 넘기지 않으면 될 터이다.

 

집 밖을 나서면 전쟁터로 나가듯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낮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집에서는 먹는 저녁 밥상은 된장찌개면 어떻고 김치찌개면 어떠랴. 식구들이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얘길 나누면 그게 사랑이며 행복이라는 걸 알면 좋겠다.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은 밥 먹을 시간도, 얘길 나눌 틈도 없다며 저녁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집이 많다. 부모와 시간을 갖지 못하는 성장기의 아이들은 사랑에 목이 마르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자라서 부모에게 돌려줄 게 없다.

 

우리집에서 먹는 밥은 바로 부모와 자식이, 부부가 서로 나누는 사랑이다. 저녁은 꼭 챙겨 먹어야 하지만 아침까지 식구들이 같이 먹는 집은 그야말로 사랑이 넘치는 집- Home, Sweet Home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가족과 달리 밥을 같이 먹어야 식구라 부를 수 있다. 식구라는 단어에 가족이라는 말과 다르게 사랑이 묻어나지 않는가?

 

 

집은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

 

대통령도, 장군도 집에서는 구성원의 하나일 뿐이어야 한다. 오죽하면 미국 대통령이 온 세계를 움직이지만 그 대통령을 꼼짝 못 하게 하는 건 그의 부인이라고 했을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했으니 대통령과 그의 부인도 자식 앞에선 그냥 부모일 따름일 것이다.

 

아무리 큰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집에선 식구 중에 한 명일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집에서는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이 지냈다는 걸 알 수 있다.  집은 그렇게 큰 사람이 작아지는 곳이다.

 

그럼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 집이라니 왜 그럴까? 집에는 식구들이 사는데 서로 공경하듯 지내면 누구든 큰 사람으로 살게 된다. 예전에는 집은 가장이 지배하는 독재적인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민주적인 관계로 사는 분위기가 되었다.

 

가사를 전담한다며 주부라는 역할로 살았던 며느리, 아내, 엄마는 누구라도 원치 않는다. 가사는 평등하게 온 식구가 함께 해야 하는데 지금은 바깥일도 함께 하며 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은 집에서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없는 시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일인가구로 홀로 사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일까?

 

 

필자 설계 경남 양산시 소재 단독주택 석경수헌-크지 않은 집이지만 손님방까지 갖춰 '우리집'으로 찾아올 사람의 범위를 넓혔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박완서의 시 '그 여자네 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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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마땅히 이런 곳이어라

투명인간의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는 집이야말로 힘든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며,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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