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을 없애야 우리집이 된다.
단독주택 설계를 의뢰 받아 건축주에게 드리는 첫 질문은 가족사항이 된다. 그 다음 질문은 무엇일까? 부부가 방을 어떻게 쓰는지 묻게 되는데 이 질문은 참 조심스럽다.
부부가 한 방을 쓰는 게 당연한 일인데 왜 묻게 되었을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내와 방을 따로 쓴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만 그런 게 아니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각방을 쓰고 있다고 한다.
내 친구들이 그렇다면 부부가 한 방을 쓰지 않는 게 특별한 경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싶어 정보검색을 해보았다. 의외로 각방을 쓰는 부부가 많아지는 추세이며 연령대로 점점 내려가고 있다 한다. 각방을 쓰는 이유는 연령대에 따라 다르지만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각방을 쓰게 되는 게 시대적 흐름이라고 한다면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아파트는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은 작은 방을 쓸 수밖에 없겠다. 단독주택을 지어서 노후를 보내려고 한다면 각방을 써도 괜찮은 얼개를 짜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각방을 쓰게 되는 이유
부부가 한 방을 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는 건 이제 지난 시절의 이야기가 되고 있는 듯 하다. 부부라면 누구나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건 얘기할 필요도 없지만 언제부터일지 모르지만 이불을 따로 덮게 되는 때가 온다. 침대를 쓰는 부부라면 더블베드 한 이불, 그 다음은 더블베드 각각 이불에서 트윈베드를 쓰게 되는 셈이다.
여기까지는 방을 같이 쓰지만 그 다음 단계는 각방을 쓰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양하다고 한다. 잠버릇이 나쁜데 견딜 만큼 견뎠으니 빈방도 있으니 서로 눈치 보지 말고 살자는 거다. 또 다른 유형은 아침형과 저녁형으로 잠 자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협의각방이니 부부사이에 별다른 문제가 되는 건 아라고 본다.
그런데 별거수준의 각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부부관계도 시들해지고 대화도 별로 없으니 한 집에 살기는 하지만 방은 따로 쓰게 되는 유형이다. 이 단계로 각방을 쓰게 되면 그 이후의 부부관계는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각방을 쓰는 연령대가 낮아지는 세태라고 하는데 각방을 쓰는 사유가 여기에 해당되고 있다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각방을 쓰게 된 부부, 안방은 누가 쓰게 될까?
안방은 부부의 침실이다. 아파트가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진화를 거듭한 공간이 안방이다. 처음에는 방의 위치나 크기로 우선이 되었지만, 욕실이 부설되다가 이제는 파우더룸에다 드레스룸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는 공간이 아이들이 쓰는 방이다. 아파트 평수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작은방은 싱글 침대에 책상과 옷장이 들어가면 가구 사이 통로가 남을 정도이다. 발코니확장이 합법화되고 난 이후의 아파트도 여분의 공간은 알파룸이라는 다목적실을 두는 추세지 아이들 방에 대한 배려는 미흡한 상태이다.
부부가 각방을 쓰게 되면 누가 안방을 쓰느냐에 따라 집에서 부부의 위상이 달라지는 셈이다. 한 사람은 스위트룸을 쓰고 다른 한 사람은 비즈니스룸을 쓰는 것이지 않는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생을 그렇게 방을 써야한다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안방이냐 작은방이냐에 따라 주종관계라는 심리적 우열감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만약에 안방을 쓰지 않는 사람이 나머지 방 두 개를 침실과 서재로 나누어 쓴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집은 작은방 하나를 옷방이나 수납공간으로 쓰는 형편이지 않은가? 가정의 주도권이 어느 편인지 알게 되는 각방쓰기가 편해 보이지는 않다.
안방이 없는 집이라야 ‘우리집’
부부가 각방을 쓸 수도 있다는 요즘 추세를 받아들이고 난 뒤로는 단독주택 설계 작업을 하면서 안방이라는 의미를 없애고 있다. 드레스룸, 욕실을 부설하는 안방을 두지 않고 집의 모든 방의 크기를 비슷하게 두었다. 집주인 한 사람의 집이 아니라 식구 모두의 집인 ‘우리집’이 되도록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집을 짓는 이유는 식구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함일 것이다. 아이들이 출가를 하더라도 내 방이 그대로 있으면 언제든지 ‘우리집’에 오고 싶을 터이다. 방의 크기가 비슷하고 내방이 제일이라야 화목한 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위트룸 같은 안방보다 부부가 함께 쓸 수 있는 방 두 개와 욕실, 드레스룸을 따로 두면 좋겠다. 혹시 방을 따로 쓰더라도 한 영역에서 잠만 따로 자면 부부의 위상에도 문제가 없게 된다. 부부가 한 영역에서 생활하니 각방을 써도 좋고, 손님까지도 내 집처럼 방을 쓸 수 있는 집, 사위나 며느리도 ‘우리집’이라고 기꺼이 찾게 될 것이다.
한 집에 삼대가 함께 살아도 좋은 집이라야 식구에게 모두 ‘우리집’이 된다. 굳이 대가족이 같이 살지 않는다고 해도 함께 모여 며칠을 지내도 편안해야 좋은 집이라 할 수 있다. 부부가 쓰는 내실 영역과 손님이 묵어가는 객실 영역의 구분을 뚜렷하게 해서 주객의 프라이버시가 잘 유지되면 집에 생기가 넘치게 된다.
부부가 평생을 함께 살아도 금슬이 유지되는 데 집의 얼개가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환갑이 넘으면 각방을 쓰고 사는 걸 흠이라 할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아예 안채와 사랑채로 거처를 따로 두고 살지 않았던가? 단독주택을 지으면서 각방을 써도 괜찮도록 집의 얼개를 짜는 건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지 않겠나 싶다. 그래도 되는 집에 살고 있는지요?
무설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 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 kahn777@hanmail.net
전화: 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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