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코로나19라는 역병이 돌면서 누구나 ‘자가 격리’ 상태에 들어 꼼짝없이 집에 갇혀서 지내고 있다. 일상의 대부분을 집에서 지내면서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거의 대부분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발코니 확장으로 외부공간이라고는 아예 없는 아파트는 완전히 닫힌 집이라 갇혀서 산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거실 앞에 발코니가 있으면 문을 활짝 열어 바깥과 집 안이 소통되어 갑갑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발코니에 꾸민 작은 정원을 돌보거나 빈자리에 의자를 놓고 햇볕을 쬐며 바깥바람을 맞으며 지내고 있을 것이다.
아파트에서는 소파에 앉아 있지 않고 거실과 주방을 일없이 이리저리 다니는 우스꽝스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TV를 켜지 않으면 정적만 감도니 아파트살이는 참 따분한 일상을 보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땜에 석 달 가까이 집에서 나가지 못하고 지내다보니 숨이 막힌다는 푸념이 어느 집이라고 할 것 없는 답답한 사정일 것이다.
이야기를 돌려서 앞으로도 이런 일이 또 생길 수 있다고 하니 집이 단순히 잠만 자는 숙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마저 들게 되었다. 집에서 잠 자는 일 말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파트가 우리집인 우리의 주거 생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생기生氣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집에 생기를 불어넣으려면 손님이 와야 되는데 부부만 지내다보면 활기가 없이 처지게 된다. 가장 귀한 손님은 출가한 자식일 테고 사위나 며느리가 자주 오는 집은 손주들이 웃음꽃을 피운다. 손주들이 오면 뛰어다니다시피 집을 헤집으며 가라앉아 있는 집에 생기가 넘치게 한다.
그런데 아이들 땜에 층간 소음이 걱정이 되기도 하고 사위 며느리가 편하게 있을 수 없어 하룻밤을 지내고 가기가 쉽지 않다. 하룻밤 묵고 가야 조손祖孫 간에 정이 들 텐데 오자마자 갈 채비를 서두르게 되니 이를 어쩌랴. 부모자식 지간이라 하더라도 자주 보고 살아야 정이 들기 마련인데 띄엄띄엄 보는 사이라 의례적인 관계가 되고 마는 게 이 시대의 세태이다.
손님이 사라진 세상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의 집에는 손님이 들지 않게 되었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지도 않지만 내가 남의 집에 방문하려는 생각도 아예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단독주택을 지을 때도 손님을 배려하는 설계가 되지 않으면 아파트나 다름없는 집이 되어버린다.
조선시대 한옥에서 두드러지는 개념은 안채와 사랑채가 구분되어 손님과 식구들이 어느 쪽도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되어 있다. 부부의 영역이 부인은 안채, 남편은 사랑채로 나뉘어져 있어서 주로 남편을 찾아오는 손님을 사랑채에서 맞게 되므로 식구들의 생활영역인 안채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은 집에 드나드는 손님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공간체계도 명확하게 구분해서 집을 지었던 것이다.
옛날에는 집에 손님이 끊어지면 가세가 기우는 것이라 보았을 정도이다. 손님에 대한 예우 정도에서 그 집의 격格을 평가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 세대에는 아예 집에 손님을 들이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파트에서 살게 되면서 그렇게 되었으니 이 시대의 집이라 할 수 있는 아파트는 조상이 물려준 미풍양속을 끊어버리게 한 셈이다.
집에 드나드는 손님이 없어져 버린 지금 이렇게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주도권을 아버지가 쥐었던 옛날과 달리 온 식구가 평등하게 된 지금은 누구라도 집에 손님을 청할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의 공간구성 상 거실에 손님이 있으면 다른 식구들의 생활에 지장을 받게 되니 식구들은 자신의 손님을 부르기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집에서 손님이란?
기氣라는 말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체에 기의 흐름이 정체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되도록 침을 맞아 막힌 경맥을 뚫는다. 물도 잘 흐르지 않으면 이끼가 끼고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집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는 집을 생기가 없다고 한다. 집이 생기를 잃어 처진 분위기가 되는 건 식구가 줄어든 요즘 어느 집 할 것 없는 공통된 현상이다. 부부만 사는 집도 그러하지만 일인가구에서 생기가 도는 집이 있을까 싶다.
부부만 사는 집에 자식들이 찾아와서 손주가 정신없이 뛰어다니면 그 때 사람 사는 집 같다는 표현을 쓴다. 집에 생기를 더하는 건 사람의 표정이든, 말소리든, 움직임이든 동적動的인 움직임이 있을 때 일어나게 된다. 그 활기를 더해주는 인자因子가 바로 손님이라 하겠다.
기의 흐름이 막히거나 원활하지 않을 때 경맥을 뚫어주는 안마나 침이 하는 역할이 집에서는 바로 손님이라 하겠다. 자식도 손님이 된 요즘에는 VIP는 사위와 며느리라고 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집에 활기를 더해주는 해결사가 자식이며 치료사는 손주가 제일이다.
손님이 편하게 묵어갈 수 있는 집
우스갯소리에 이런 얘기가 있다. 식객이 며칠이 지났는 데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아 주인이 내쫓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 날 마침 비가 내리는 데 주인은 가라고 가랑비가 내린다 하니 손님 왈, 더 있으라며 이슬비가 내린다고 응수를 했다고 한다. 객이 배짱이 좋은 철면피라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만큼 편히 머무를 수 있어 손님이 끊이지 않는 집이라면 생기가 넘치게 될 것이다.
백년손님이 사위 뿐 아니라 며느리까지 해당되는 요즘 자식들이 자주 오는 집만큼 남의 부러움을 사는 집이 있을까? 손주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은 노후에 더 바랄 게 없는 행복이 가득한 집이다.
아파트를 벗어나려고 단독주택을 지으면서도 손님에 대한 배려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이보다 더 큰 낭패가 있을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외로움이 가장 큰 걱정이라면 손님이 내 집보다 더 편하다며 자주 찾는 집을 지으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단독주택을 짓고 살 계획을 가지고 손주들이 자주 찾아오길 바란다면 손님을 배려하는 설계를 어떻게 할지 깊이 고심할 일이다.
도서출판 담디 E.MAGAZINE 연재중 (2020. 4.)
다음 편은 '안팎으로 소통되는 집, 안으로만 닫힌 집-마당에 대한 소고小考'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무설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 kahn777@hanmail.net
전화: 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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