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건축에서 중국집은 중정中庭, 일본집은 庭園, 우리 한옥은 마당이라는 외부공간의 특성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한옥에서 마당은 집의 영역별로 내부공간의 기능을 보조하거나 보완하게 된다. 한옥에서 건물은 대지의 가운데 앉혀지며 담장을 경계로 각 영역의 마당이 완충공간이 된다.
중국집은 건물이 담장의 역할을 하거나 건물이 없는 자리는 높은 담장을 설치하여 외부와 단절한다. 일본집은 내외부의 공간 연계성을 가지지 않으므로 건물의 현관이 주출입구로 내부에서 각 실의 동선을 해결한다. 한옥은 건물을 둘러싼 각 영역의 마당에서 내부공간으로 출입하고 담장은 키높이 정도로 시선이 열려 개방적이다.
한옥에서 담장은 마당이라는 지붕 없는 공간의 외벽이 된다. 따라서 한옥의 특성은 마당에 쓰임새가 부여되어 있으므로 대지영역 만큼 꽉 채운 큰 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한옥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내부공간의 크기를 적게 쓰면서도 마당과 하나 되는 큰 공간 구성을 통해 자연과 합일되는 주거생활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단독주택은 이러한 한옥의 전통을 이어 외부공간을 구성해야 ‘우리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한옥에서 그쳐버린 우리나라 단독주택의 얼개를 이 시대에 다시 여는 열쇠는 바로 마당이다.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집, 내부공간의 각 영역의 쓰임새를 보완하고 풍부하게 할 다양한 마당을 찾아보자.
Public Zone/사랑채와 사랑마당-거실영역과 마당
한옥의 사랑채 역할은 이 시대의 주택에는 거실영역이 될 것이다. 공적영역-Public Zone으로 거실과 주방식당에 식구들이 모이고 손님을 응대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과 관련되는 외부공간은 거실에서는 큰마당, 주방은 안마당, 식당은 테라스나 작은마당이 짝이 된다.
거실이 데크를 거쳐 큰마당으로 이어지는 건 일반적이다. 하지만 주방과 안마당, 식당과 작은마당이 짝지어져야 하는 건 간과하기 쉽다. 우리나라의 음식문화는 장독에 오래 묵히는 장醬이 있고 매실청도 있다. 정지마당의 역할을 살려야 단독주택에 사는 재미가 더해질 것이다. 안마당과 이어지는 텃밭도 제자리를 달라고 요청하는 걸 놓쳐서는 안 된다.
식당과 하나 될 작은마당은 특히 언급하고 싶다. 식당이라는 구획된 공간을 따로 두지는 않더라도 테이블을 놓는 자리를 찾아내는 건 아주 중요하다. 요즘 거실이 TV를 시청하는 자리로 전락하다보니 식구들이 얼굴을 마주 볼 기회를 잃어 버렸다. 거실에서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이외에는 다른 행위가 이루어지는지 생각해 보자.
식탁은 주방 가구의 하나지만 테이블은 공적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독자적인 가구가 된다. 테이블에서 와인 잔을 세팅하는 시간을 가지며 노트북을 놓고 글을 쓰기도 할 것이다. 또 테이블이 있어서 커피나 차를 옆에 두고 책을 읽는 일상의 여유도 가지게 되지 않겠는가? 이 테이블에는 유리를 얹으면 안 된다. 원목 테이블이라면 나무가 주는 촉감을 느끼는 것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테이블이 놓이는 자리는 어디가 좋을까? 그 자리와 이어지는 작은마당이나 데크가 있어야 햇살이 비치는 봄, 달빛이 내리는 가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으리라. 멀리 산이 보이거나 가까이 피어있는 꽃도 볼 수 있어야 하겠다.
Privite Zone/안채와 안마당 혹은 뒤뜰-서재와 정원
한옥의 안채는 주인영역-Master Zone에 대입할 수 있다. 집주인인 부부가 쓰는 사적인 공간을 침실에 한정하지 않고 영역을 따로 구분하여 독자적인 공간을 구성한다. ‘부부의 집’이 아니라 식구 모두를 위한 ‘우리집’으로 설정하자면 집 주인인 부부가 쓰는 영역이 독립되어야 한다,
부부의 영역이 독립될 수 있어야 다른 식구들의 공간도 존중받을 수 있다. 아파트 평면을 들여다보면 부부의 집일 뿐 다른 식구들은 현관 근처에 문간방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님을 모시기 어렵고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면 학교 앞 원룸촌으로 독립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주인영역-Master Zone은 침실, 욕실, 서재로 구성하면서 서재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한다. 서재와 이어지는 외부공간은 정적인 분위기가 되므로 마당보다는 작은 정원으로 구성하면 좋겠다. 거실이 식구들이나 손님과 함께 보내는 동적인 공간이라면 서재는 부부나 남편의 위한 정적인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출가하여 사위나 며느리가 아이들과 함께 부모를 찾아오면 그들에게 편안한 집이 되어야 한다. 이 독립되어 있으면 손님들은 그들의 영역-Guest Zone에서 머무르기가 편안해진다. 자식들이 친구들을 데리고 오더라도 독립된 주인영역-Master Zone이 있으니 그들의 방문에도 지장을 받지 않으니 주인과 손님 모두 다 좋은 ‘우리집’이 된다.
한옥에는 안채와 사랑채가 영역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이러한 영역의 구분은 사랑채에 손님이 오더라도 안채의 식구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게 했었다. 우리 조상들은 집의 모든 식구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옥에서 배우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이 시대의 집에도 담아내면 한국 사람이라는 유전자가 능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겠는가?
‘부부의 집’과 ‘우리집’은 다르다
우리나라의 주택이 아파트로 대표되면서 삼대三代가 한 집에 사는 아름다운 주거문화가 무너져 버렸다. 아파트에서는 부부와 자식들이 함께 살기에도 버거워서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면 집을 떠난다. 일인가구가 대도시에서는 곧 전체가구의 30%를 넘을 것이라는 통계를 접한다.
외부공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음은 발코니를 잃어버린 아파트의 폐해가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아파트의 발코니는 공중에 떠 있는 집의 최소한의 외부공간이다. 발코니가 있으면 내부공간은 문으로 열린 집이 되지만 발코니를 없앤 집은 창으로 닫히고 만다.
발코니가 있는 집은 철마다 꽃이 피는 정원을 둘 수도 있고 봄가을에는 거실 문을 열어두고 살 수도 있다. 15층을 넘어 80층까지 하늘을 찌를 듯 초고층으로 지어올린 집은 창문마저도 열지 못한다. 외부와 단절되어 폐쇄된 내부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아파트가 ‘우리집’이 될 수 있을까?
삼대三代가 함께 살 수 있으며 출가한 자식들의 식구까지 기꺼이 품을 수 있는 ‘우리집’이라야 집은 사람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주택에서 묘안妙案은 ‘부부의 집’이 아닌 식구와 손님 모두가 편안한 ‘우리집’이 되는데 있다. 우리 식구가 모두 만족하려면 구성원이 자신의 영역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하며 그 소스에 내외부공간이 하나 되는 얼개로 구성이 되어야 하는데 있다.
집을 짓는 목적은 그 집을 쓰는 구성원 모두가 바라는 공간을 충실하게 확보하는데 있다. 부부의 집인 아파트 얼개로 단독주택을 지어서 산다면 외로운 삶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는 ‘우리집’은 자식과 손님까지 배려한 한옥에서 이어지는 얼개를 가져야 하리라.
이 시대 단독주택의 연원淵源을 한옥에서 찾아야 함은 우리는 몸속에 조상으로부터 이어온 유전자가 기억하는 주거습성 때문이다. 마당이라는 우리 한옥만의 독특한 외부공간의 쓰임새는 집 안의 각 실과 이어져 하나로 완결되는 되는 저마다의 특성이 부여된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우리집’은 한옥에서 계승된 다양한 마당이 거실과 테이블의 공간과 주방과 서재와 어우러져야 백년가百年家로 지어질 수 있다.
DAMDI E.MAGAZINE 연재중 (2019. 6.)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 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 kahn777@hanmail.net
전화: 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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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마당 발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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