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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택/울주 주택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는 집

부리님 집의 얼개가 거의 다듬어졌다. 대지 현황 측량도를 받아 건물이 앉을 수 있는 범위를 파악했을 때만 해도 암울했었다. 그런데 이만큼 정리가 되고 보니 그동안 쉰 채가 넘는 단독주택을 설계하면서 축적된 내공이 만만찮다는 걸 알게 된다.

 

대지에 주어진 여건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이대로 집을 지으면 되겠다는 확신 없이 설계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집을 짓지만 나중에는 그 집이 식구들의 삶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설계대로 집을 지으면 부리님과 아이들 뿐 아니라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내가 가지는 확신을 글로 써본다.

 

부리님이 아이들과 어머니를 위해 집을 지어내고 말겠다는 힘든 결정에는 찬사를 보낸다. 그렇지만 부리님의 의지 외에는 집을 짓는 여건이 이보다 더 어려울 수 없다고 할 정도이다. 세상의 모든 결정은 최상은 없고 최선이 있을 뿐이니 얼마나 애를 썼느냐에 따라 후회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집보다 더 편안한 곳은 없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 오는 집

 

박완서의 시 ‘그 여자네 집’ 중에서

 

 

우리집을 생각하면서 이 시보다 더 와닿는 느낌이 있을까? 그립고 정답고 따뜻해져 오는 집에서 사는 게 이보다 더한 바람이 없을 것이다. 집에서 바깥으로 나와 있으면 일이 마쳐지는 대로 서둘러 돌아가고 싶어야 한다. 집에 있으면 볼 일 없이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을 만큼 편안해야 한다.

 

밤이 이슥한 시간인데도 불이 켜지지 않는 아파트, 이런 집은 그냥 아파트일 뿐 우리집이 아니다. 우리집이 좋아서 아이들이 친구들을 데려오고, 어머니는 손주들을 돌보는 게 즐거워하니 삼대가 어우러지는 일상이 얼마나 행복할까? 식구들이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나누는 건 맛있는 밥만큼 정다운 이야기꽃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는 작은 마당은 집에서 펼쳐지는 이벤트의 원천이 된다. 봄이면 꽃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나무 그늘이 여유롭고. 가을이면 선선한 바람을 담고, 겨울이면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는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어 우리집을 짓는다.

 

 

필자 설계 양산 심한재(도반건축사사무소) 저녁이 되면 불이 켜진 집, 식구들은 종종걸음을 쳐서 돌아가는 곳

 

 

동녘길 주택에 들어 보니

 

작은 땅에 짓는 집이라 대문 없이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선다. 중문을 열고 들어가니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이 반긴다. 작은 홀에서 오른쪽에는 식구들이 머무는 방이 세 개 있고 작은 복도 끝에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홀의 오른쪽에는 마당에 면한 긴 벽을 따라 주방과 거실이 있다.

 

방 세개

큰방은 둘이 써도 될 만큼 여유가 있다. 부리님이 엄마와 써도 되겠고 막내가 더 클 때까지 함께 써도 되겠다. 작은방은 크기가 같은데 가운데 방은 뒤뜰로 나갈 수 있어 부리님의 엄마가 쓰면 좋겠다. 가운데 방은 쌍미닫이 문을 두어 복도가 답답하지 않도록 했다.

 

욕실

방 앞에 있는 욕실에는 파우더룸을 두어 집의 쓰임새가 아파트와 다르고 식구들의 속옷을 수납하는 옷장이 있다. 파우더룸 왼쪽에는 화장실, 오른쪽은 욕실을 두어 네 식구가 함께 써도 불편함이 없겠다. 한 사람은 샤워, 다른 사람은 양치질, 또 다른 사람은 변기를 쓸 수 있으니 욕실이 하나라도 세 사람이 함께 쓴다.

 

다락

경사지붕이 있는 집은 다락을 둘 수 있어 너르지 않은 집을 넓게 쓸 수 있다. 우리집은 폭이 넓어서 다락을 넉넉하게 쓰게 되었다. 아이들의 공부방, 부리님의 서재로 쓰고 낮은 부분은 수납공간으로 쓴다.

 

거실과 주방

공용공간인 거실과 주방은 마당에 면해 있어 남향의 양명한 빛이 온종일 들어온다. 현관 가까이 주방이 있고 테이블은 거실과 사이나 주차 공간 쪽 벽에 붙여서 두어도 되겠다. 거실은 폭이 4.5미터라서 여유 있게 쓸 수 있겠다. 거실과 주방은 경사지붕 아래 공간으로 풍성하게 높은 공간감을 누릴 수 있다.

 

주방에 면해 다용도실이 있고 뒤뜰과 마당으로 장독대나 빨래를 말리기 위해 이동할 수 있다. 거실에서는 동남쪽의 데크로 나가 마당으로 출입한다.

 

 

계획안으로 확정된 동녘골 주택 평면도

 

 

네 곳의 외부 공간

동녘골집의 외부공간은 크게 네 곳으로 나뉜다. 우선 진입공간인데 대문은 마당으로 통하는 쪽 주차장 앞에만 설치한다. 현관과 도로는 3미터가량 떨어져 있어 프라이버시가 확보된다.

 

북쪽에는 방에 면해 뒤뜰이 있다. 도로가 우리 대지보다 높아서 뜰을 두어 습한 기운이 집 안에 드는 걸 방지했다. 큰방은 작은 뜰에, 가운데 방은 큰 뜰로 튓마루를 통해 바로 나갈 수 있다. 한옥에 사는 느낌의 공간 연출이랄 수 있다.

 

서쪽과 남쪽은 주차공간과 마당이 이어지는데 주방과 거실이 닿아있다. 주차공간에는 잔디블록을 깔아서 작은 마당을 넓게 확장하는 효과를 주도록 한다. 남쪽에는 소박한 마당이 있는데 동쪽으로 붙여 덱크를 깔고 키 큰 활엽교목을 심는다. 이 덱크를 통해 거실과 마당을 잇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누리는 여유를 상상해 본다.


 

백 평이 넘는 집부터 서른 평에 미치지 못하는 집까지 설계하면서 집 크기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처가 식구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의 고충을 덜기 위해 찾아온 분, 홀 시아버지와 한 집에서 모시며 살아야 하는 며느리의 입장을 덜어달라고 찾아온 분, 일흔이 넘어 노후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 집을 지어 살겠다는 분 등 단독주택을 지어야 하는 절실함에 공감하며 그 바람을 해결하며 건축사의 일에 보람을 느끼며 설계를 해왔다.

 

집은 큰 집과 작은 집으로 나눌 수 없다. 아무리 큰 집이라도 행복을 담을 수 없다면 공허할 뿐이다. 비록 작은 집이지만 집의 곳곳마다 따스한 기운이 솟아나고 웃음으로 채워진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동녘길집은 분명 웃음이 담장을 넘는 집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설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 kahn777@hanmail.net

전화: 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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