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獨走가 아닌 소통疏通은 개인의 영역이 보호될 때 큰 하나의 질서에 동참할 수 있다. 가장 중심의 종적질서의 집이 아파트를 포함하는 지금까지 살아온 주거공간이었다. 과거의 집이 아니라 개개인의 영역이 확보되어 세대 간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미래의 집은 어떠해야 할까?
아파트는 ‘부부만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깊이 뿌리를 내려버렸다. 아파트를 부부만을 위한 집이라고 단정을 내리는 근거가 있을까? 전용 공간이 백 평이 넘는 아파트도 삼 세대 거주가 힘들 뿐 아니라 자식들의 영역은 배제되어 방 하나에서 그치고 있다.
아파트에서 홀로 된 노부모와 함께 지내기가 어렵고,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면 학교 앞 원룸으로 분가를 서둔다. 출가한 자식들이 자주 찾지 않으니 손주 얼굴 잊어먹겠다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는 푸념이 아파트의 한계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삼 세대 거주가 힘든 세태라고 해도 ‘부부만을 위한 獨奏의 공간’이 아니라 삼 세대가 어우러질 수 있는 ‘화음和音의 집’을 꿈꾸어 본다.
한 집에서 삼대三代가 잘 지낼 수 있다면
15년 정도 지난 일이지만 부산 기장군에 양화당養和堂이라는 당호로 설계했었던 적이 있었다. 홀시아버지와 부부, 딸이 둘이 사는 가족 구성원을 위한 집이었다. 거실과 주방을 가운데 두고 거실에 면해 부부침실, 주방을 끼고 딸 자매가 함께 쓰는 방과 할아버지 방을 붙여서 배치했다. 며느리와는 떨어지고 손녀와는 가까이 하며 생활하는 개념으로 집을 지었다.
며느리와 시아버지는 어려운 사이이니 일상에서 덜 부딪히는 게 좋고, 조손관계祖孫關係는 가까울수록 좋다. 가족의 영역 설정이 설계자의 의도와 실제 생활이 잘 맞아서 화목을 키우며 사는 집이라는 당호가 딱 맞아 떨어졌다.
집이 지어지고 난 뒤에 가끔 방문하다가 최근에 지나는 길에 들러보니 할아버지는 잘 지내시다가 작고하셨다고 했다. 아이들도 잘 자라서 큰 아이는 출가했고 작은 아이는 집 근처의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양화당이라는 당호의 뜻처럼 살고 있었다. 설계자로서 건축주의 사정을 마음에 담아 설계 작업을 했던대로 살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처칠이 말한 ‘사람이 집을 짓지만 나중에는 집이 삶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실감하는 사례가 될 수 있겠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기르지만 아마추어로 그 노릇을 시작한다. 조부모는 아마추어를 지나 손주를 기를 때 프로로 부모노릇을 할 수 있다. 삼대가 한 집에 살면 아이는 좋은 성장환경에서 자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옮겨 살면
이 시대는 부부 평등, 자식의 조기독립 시대를 살고 있다. 부부가 모두 경제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은 남편이 가장家長이라는 의식은 이미 실종되었고 자식들이 부모의 명을 받드는 세상이 아니다. 집이라는 틀에서 보면 식구들이 누구든 자신의 영역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안방만 제 위치를 따지는 집이 아니라 식구들 모두가 자신의 방을 중심으로 집의 영역을 살피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왜 대학만 입학하면 독립을 꾀하는가? 출가한 자식들이 왜 부모를 잘 찾지 않는가?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해진다. 집에 안정된 자신의 영역이 없기 때문이다. 부부의 생활공간에 맞춘 집이라서 다른 식구들이 들어오면 불편해지기에 오면 반갑다가도 조금 있으면 어서 가길 바라게 되는지 모르겠다.
인생후반기에 단독주택을 지어 살아보려고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다. 그렇지만 대부분 공감대를 가지는 건 아파트에서 얻을 수 없는 주거생활을 찾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게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도 다 다르겠지만 손주와 자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식구들이 모두 편히 지낼 수 있는 집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하리라.
부부의 집이 아니라 손주가 찾아오는 우리집
단독주택을 지어 산다고 해도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 손님이 하룻밤을 묵어가기가 불편하다. 그러다보니 출가한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와도 자고 가기는커녕 오자마자 일어설 생각부터 한다. 부모도 자식도 한 집에 있기가 얼마나 불편했으면 손주가 찾아왔는데도 오면 반갑고 돌아간다고 하면 더 반갑다했을까?
며느리와 사위가 제집처럼 편해야 손주들이 잠을 자고 갈 수 있다. 그래야만 할배 할매가 손주들과 느긋하게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으니 조손간에 정이 깊어진다. 호적에 올라 있는 손주가 아니라 할배~~~하고 달려오는 피붙이가 있어야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집이다보니 자식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산다. 하지만 단독주택이라면 손님이라도 내 집처럼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서 지어야 할 것이다. 부부만 잘 살 수 있도록 집을 짓고 살면 과연 외로움을 극복하면서 그 집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손님, 그 중에서 자식들이 와서 지내도 한 식구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집, 그 집이라야 비로소 ‘우리집‘이라 할 수 있겠다.
단독주택을 지으면서 부부만 만족하면 그만이라며 지어서 사는 독주獨奏의 집이 아니라 며느리, 사위도 좋아해서 할배 할매와 손주가 어울려 식구들의 화음和音이 어우러지는 집으로 지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도서출판 담디 E.MAGAZINE 연재중 (2020. 6.)
다음 편부터 양산 지산리 단독주택 '心閑齋'의 설계과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 kahn777@hanmail.net
전화: 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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