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을 지어서 살아보려고 하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식구’만의 행복한 주거생활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아파트 생활의 갑갑함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단독주택에 대한 막연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파트를 벗어나 살기가 어렵기에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는 그림 같은 집은 부러워 할 대상일 뿐이다. 그러면 단독주택을 지어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바람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아마도 단독주택에 살아보니 정말 행복하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경치 좋은 곳에 전원주택을 지어서 살아보려는 꿈을 꾸다가 막상 실행에 옮기려고 하면 우리집의 얼개를 짜기가 쉽지 않다. 대지는 몇 평이나 되어야 하며 집의 규모는 얼마나 잡아야 하고 공사비는 어떻게 가늠해야 할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지 막막할 따름일 것이다.
대지면적은 대충 백 평 정도면 되고 너무 큰 집은 부부가 살기에 부담이 되니까 서른 평 정도면 될지, 공사비는 너무 많이 들이면 부담스러우니 가능한 싸게 지으면 어떨까? ‘대충, 정도, 가능하다면’이라는 짐작을 확정해가는 경로는 소경이 코끼리만지기처럼 답답할 것이다. 정보 검색을 통해서, 관련 서적을 찾아서 열심히 읽어보고, 먼저 집을 지어 사는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해서, 관계전문가에게 다 맡기면 답이 나오게 될까?
단독주택을 짓기 위한 첫 명제는?
질문이 올바르면 그 안에 이미 답이 나와 있다고 한다. 첫 질문은 ‘우리는 단독주택을 왜 지어서 살려고 하는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집을 지으려는 목적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얘기하지만 그건 너무 추상적이다. 설계를 의뢰하면서 ‘우리식구가 행복하게 살 집’을 원한다고 요구한다면 건축사는 그 답을 내어 줄 수 있을까?
필자가 바다가 있는 도시에 단독주택 설계를 의뢰 받았던 적이 있다. 건축주가 집을 지으려는 목적이 너무나 절실하고 명확했다. 건축주는 부모님뿐 아니라 장성한 동생도 함께 살고 있는데 대가족이라 한집살이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 해결책으로 식구들이 다 만족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단독주택을 짓기로 했다는 것이다. 대가족이 다툼 없이 화목하게 살고 싶다는 건축주의 간절함, 소박한 바람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풀기 어려운 우리 시대의 화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건축주의 간절히 바람이 내가 설계했던 집에서 이루어졌을까?
대지와 집의 크기나 개략 공사비 등은 집을 짓기 위해 던질 수 있는 질문 중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야 한다. 아파트에서 살기 싫어서 단독주택을 원한다는 건 우리집을 짓는 사소한 동기動機일 뿐이다. 단독주택을 지으려는 이유가 절실해야만 그에 맞는 요구조건도 명확해 진다. ‘우리집’의 얼개 짜기 시작은 집의 규모보다 이렇게 살고 싶다는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일이다.
부부가 여생을 보낼 단독주택을 지으려는 건축주를 대신해서 질문을 던진다면 ‘단독주택에 살면 외로울 텐데 어쩌지?’이다.
외로운 삶에 대한 아파트와 단독주택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은 입지여건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다. 물론 아파트도 정서적으로는 사람들과 어우러져서 지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단독주택이 위치하는 곳은 대부분 전원이나 도시의 외곽이기 쉽다. 그러므로 장소가 주는 여건 때문에 외로울 수밖에 없으리라는 명제를 극복해야만 한다.
외로움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팔자라서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넘겨 버릴 수 있을까?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외롭다는 감정이 일면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 잠깐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집을 비우고 밤늦도록 배회하고 있나 보다.
‘단독주택에서 살면 외롭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단독주택에 사니까 외로울 틈이 없습니다.’라는 답이 될 수 있는 집을 지어야만 근본적인 해결이 된다. 아파트는 그곳에 사는 사람이 외롭기도 하지만 밤이 늦도록 불이 꺼져있으니 집이 더 외롭다. 단독주택에서 어떤 얼개를 가지고 있으면 외로울 틈이 없이 살 수 있는 집이 될 수 있을까?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집의 얼개
아파트에서 사는 데 익숙해서 그런지 단독주택을 지으면서도 손님에 대한 배려가 반영되지 않는다. 단독주택에 산다는 건 대부분의 일상을 집에서 보낸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대지가 전원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고 도시의 외곽이라고 하더라도 밖에서 볼 일을 마치는 대로 집으로 돌아온다.
단독주택을 짓는 연령대는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밤늦도록 일을 보는 나이는 아닐 것이다. 평생을 살아온 부부가 아무리 다정하다고 해도 한정된 이웃과의 교분만으로는 외로움을 극복하며 지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가끔 우리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야만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집’에 찾아드는 손님이 있다는 것이 요즘 세태로 보면 참 희유한 일이다. 자식마저도 집을 나가 살게 되면 부모를 잘 찾지 않는데 웬 손님이 찾아올 수 있을까? 찾아 올 손님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파트라는 집의 얼개가 손님이 올 수도, 초대할 수도 없게 만들어 버리게 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집에 손님이 들지 않으면 집의 기氣가 돌지 않아서 흉하다고 했다. 집의 길흉화복을 따지는데 음양의 조화를 중시했다. 집의 얼개를 짜면서 안팎의 경계를 잘 따져서 열고 닫는 구분을 자연의 이치에 거스르지 않았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양의 기운이 돌게 하는 동기動機가 되니 집 안의 활기를 불어넣게 된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기가 정체되니 음기에 눌려 우울한 분위기가 되고 만다.
정중동靜中動, 운기運氣로 보는 단독주택의 얼개
부부의 공간을 위주로 하는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다름없어 생활의 리듬은 정靜적인 분위기가 될 것이다. 부부만 살다보니 외로울 수 있는 집 분위기에 활기活氣를 더하기 위해서는 어떤 동기動機가 필요하게 된다. 그 동기의 요인이 손님의 방문이라 할 수 있다.
만약에 손님이 찾아와서 식구들의 일상이 불편하다면 손님도 다시 찾아오기가 망설여지고 주인도 손님을 부르기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손님이 기꺼이 찾아오거나 부를 수 있기 위해서는 집의 얼개가 손님이 배려되어 있어야 한다. 요즘은 손님 중의 손님은 뭐니뭐니해도 출가한 자식인데 사실은 손주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해서 부모 찾기를 망설인다면 외로움보다 더한 고독한 삶이 되지 않겠는가?
손님의 방문을 배려한 집의 얼개는 세 영역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제1의 영역은 안방과 서재로 주인부부의 공간이다. 제2의 영역은 침실이 최소 둘 이상 갖추어진 손님의 공간이며 제1의 영역과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어야 한다, 제1의 영역은 항상 고요한 분위기가 유지되어야 하며 제2의 영역은 잠깐 묵고 가는 손님이 쓰게 되니 움직임이 활발한 공간이라 할 것이다.
제3의 영역은 거실과 주방으로 제1, 제2의 공간과 연계되어 쓰게 된다. 제3의 영역인 거실공간은 한옥으로 보면 사랑채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침실영역이라 할 수 있는 안채와는 독립되어 있어서 늘 손님을 맞아도 가족들의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 부부와 관계된 어떤 손님이 오더라도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는 영역으로 구성을 해야 한다.
출가한 자식이 오더라도 편히 며칠을 묵어갈 수 있는 집, 부부 양쪽이나 어느 한쪽의 벗이라도 편하게 지내다 갈 수 있는 집이면 정중동靜中動의 생기生氣가 흘러넘치게 된다. 부부의 일상은 편안하고 손님이 오면 활기가 더해져서 외롭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 편은 각 영역을 구성하는 좀 더 상세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DAMDI E.MAGAZINE 연재중 (2018,10,30)
무설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 kahn777@hanmail.net
전화: 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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