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의 다 아파트에 산다. 단독주택은 대부분 오래된 집이고 최근에 지은 집은 마음먹고 지어서 산다. 아파트에서 사는 우리네 주거생활은 얼마나 만족스러운 지 따져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긴 아파트가 좋아서 사는 게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살 수밖에 없으니 따지고 말고 할 게 없기는 하다.
집이라는 정체성은 사는(living) 곳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사는(buy) 것이 되어버린 게 현실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집을 한번 지으면 대를 물려서 살았지만 우리가 사는 아파트라는 집은 부동산으로 전락되어 재산 증식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집을 ‘사는(living) 곳’으로 보고 수십 년을 한 집에서 사는 사람은 가난하고, ‘사는(buy) 것’이라는 걸 일찍 깨친 사람은 집만 몇 번 옮기는 것으로 富부를 축적하며 살고 있다.
지금은 집을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이라 여기며 수십 년을 한 집에서 사는 사람은 바보가 된 세상이다. 그러니 아파트를 좋은 집이니 아니니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집이란 결코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이라 여기는 바보라서 아파트에 대해 할 말을 좀 해야겠다.
집은 사는(living) 곳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사는(buy) 것이 되어버린 게 우리네 주거의 현실이다.
아파트도 사는(living) 집이 될 수 있는데 공급자가 만들어주는 대로 받아서 살다 보니 우리네 삶이 망가져 버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찍이 루이스 칸이라는 건축가는 집이 사람의 삶을 결정짓는다고 하면서 집을 설계하는 사람은 그만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렇기는 하나 나도 건축사로서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려 하지만 건축주나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아파트도 그렇지만 소위 원룸, 투룸이라 부르는 소형 공동주택은 집이라는 정체성에서 더 멀어져 있다. 소형 공동주택은 주로 임대 사업자의 수익용으로 지어지는데 주거 여건에서 잠만 자는 숙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전용 면적이 아무리 적어도 집이라고 할 만큼 여건이 갖춰서 지으면 얼마나 좋을까?
전용면적이 백 평인 대형 아파트나 열 평 이하의 소형 아파트를 불문하고 집이라 할 만한 분위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공동주택이 집답지 못하다는 근거를 어디에 둘 수 있기에 감히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얘길 들을 수도 있다. 아파트가 집답지 못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집 다울 수 있게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 그곳이 집이다.
우리는 누구나 집에 산다. 바깥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가는 게 아니다. 집에서 지내다가 잠깐 밖으로 나간다. 바깥에서 잠시 볼 일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 그곳이 집이다.
-이갑수 산문집 '오십의 발견’
집의 정의가 이 글보다 명쾌할 수 있을까 싶다. 바깥에서 일이 마쳐지는 대로 돌아가고 싶어야 집이라 할 수 있다. 어둠이 벌써 깔린 시간인데도 불이 켜지지 않은 집을 집이라 할 수 있을까? 밤이 되면 집집마다 창에 불이 켜진 마을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집다운 집에 대한 그리움은 물리적인 집은 많아도 정서적인 집이 드문 이 시대 사람들의 애환이지 않을까 싶다.
이어지는 글에서 집다운 집일 수 없는 아파트의 현실을 비판하고 돌아가고픈 집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브런치 글 2021.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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